고추에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각각 다르게 불리워진 까닭은 도입경로나 특징에 따라서 우리나라에 고추를 소개했던 여러 서적들에서 각기 다르게 표기했던 연유인 것 같다.
지봉유설(이수광:1614년) : 고추를 가리키는 남만초(南蠻椒 有大毒始自倭國來故俗謂倭芥子 往往種之)의 기록이 있고, 그 도입경로가 왜국인 까닭에 왜개자(倭芥子)라고도 불렸으며, 가끔 이것을 재배한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도입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성호사설(이익: 1723년경) : 왜인칭번초 아국칭왜초(倭人稱蕃椒 我國稱倭椒)
산림경제(홍만선:1715년경) : 고추를 남초(南椒)라 하면서 그 재배법을 설명
증보산림경제(류중임:1776년) : " 고추 가운데 짧고 껍질이 두꺼운 한 품종이 있어서 이것을 특히 당초(唐椒)라 한다." 고 기록
오주연문장전산고(이규경:1850년경) : 번초(番椒), 고초(苦椒), 남만초(南蠻椒) 등의 명칭과 도입경로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 이후에 담배, 호박과 함께 도입
최남선(1890~1957) : 고초(苦椒)가 담배와 함께 일본군을 따라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어온 것이고, 일본에서도 담배와 동시에 서양 상선을 통하여 전래된 것.
고초(苦椒)는 후추(胡椒)와 비슷한 쓴 맛의 것이라 하여 우리나라에서 지은 이름이거니와 당초에는 외번(外蕃)의 것이라 하였고, 남양에서 전래된 것이라 하여 남만초(南蠻椒)라고도 하였다. 또 외국을 의미하는 당자(唐者)를 붙여서 당초(唐椒)라고도 하였고, 또 왜개자라고도 하였다.
최남선은 1597년경으로 추정
이춘녕(이조농업기술사)은 1615년 경으로 추정
장지연(1977)은 [지봉유설]에 나타난 고추 재배상황 및 고추 식용상식으로부터 고추의 도입 시기를 임진왜란(1592~1598) 이전으로 추정
홍만선이 저술한 산림경제(1715)에 고추의 재배적지, 재배법, 품종(唐椒)의 특징 등이 기술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시기에 종자가 중국에서 도입되고 재배가 일반화되면서 지역특성에 맞는 재래종이 분화되어 온 것으로 추정
몽유(蒙纜)(이재위(李裁威))- 1850년대에 북호(北胡)에서 들어왔다고 기록
우리나라에는 1641년 광해군 6년에 일본에서 파급된 것이 처음이며, 그 후 1710년 숙종 36년에 중국에서 도입된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조선 사람을 독한 고추로 독살하려고 가져왔으나 이로 인하여 오히려 한민족이 고추를 즐기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일본의 여러 문헌에는 고추가 임진왜란 때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민간에서는 장을 담근 뒤 독 속에 붉은 고추를 집어넣거나 아들을 낳으면 왼 새끼줄에 붉은 고추와 숯을 걸어 악귀를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