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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과 향, 열매의 고장

    전북 임실
    사선녀마을

    사선녀의 아름다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
    시기마을

    시기마을

    시기리(時基) 장터
    북부 3개면에서는 가장 융성한 시장 터였으며 1900년경 시장을 소재지로 옮기기 전까지는 시장이었다 하여 시기라 칭하였다. 사선대도 이 마을에 있다.
    이곳은 본시 삼한 때부터 장터로 되어왔다고 한다.
    이곳에 철도와 국도가 개설되자 현재의 장터가 생겼으며 대리 보가 앞에 가까워 일제시 천연빙고가 2동이나 있다. 지세로는 사선대의 청학 날개 끝이 마을까지 내려와 날개가 되었으며 등성이 생기고 지대는 높다고 했다. 진안으로 가는 진입로이다.
    사선대 아래 어수 보가 있어 병암리 일대 용산과 창인 일부를 통괄하는 젖줄이다. 이곳은 현재의 도로 주변이 마을이었으나 17번 국도가 확포장하는 바람에 현재의 산 지역으로 올라가 마을이 형성되었다.
    94년 취락구조 개선으로 현재는 반수이상의 현대적 건물이 들어섰다.

    사선대

    사선대의 전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마이산(馬耳山)의 두 신선과 운주산(임실면)의 두 신선이 하루는 이곳 관촌의 오원강 기슭에 모여 놀다가 병풍처럼 아름다운 주위의 풍경에 취하여 혹은 대에 오르기도 하고 혹은 바위 위를 거닐기도 하면서 맑은 물에 목욕하고 즐기더니 까마귀 떼가 날아와 함께 어울리고 있을 때 홀연히 네 명의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네 사람의 학발 신선들을 호위하여 사라졌다.
    이후로 해마다 이맘때면 그들 선남선녀들이 놀았다 하며 그리하여 이곳을 사선대라 하고 까마귀가 놀던 이 강을 오원강이라 불렀다 한다.
    또 신선이 놀던 바위를 놀음바위라 부르고 있으며 검은 절벽사이의 이름 모를 꽃들, 그 밑을 흐르는 강물이 그야말로 선경을 이루고 있다.

    또 일설에 의하면 정조 때 관촌면 주천리의 상산 이 씨 이달효는 아호를 호산이라 하고 문장이 뛰어나 [호산집]일책을 펴내기도 했는데 그당시 호남의 명사들과 널리 사귀어 임실 현감 이도재와도 막연한 사이였다.
    이때 이도재 현감은 전주 판관과 남원 부사 호산(湖山) 이달효 등과 같이 네명이 항상 오원강 위에 배를 띄워 놀고 또 대의 명승을 자주 찾아왔다.
    이들 네 사람은 서로 나이도 비슷하여 이미 노년에 접어 들고 이곳에 모일 때는 언제나 관복을 벗고 평복을 하였으므로 마치 네 사람의 신선과도 같아 어느덧 그들이 놀던 대를 사선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박우현(남, 임실군 관촌면 관촌리)